유통시설 리뉴얼 사례:기존 입지의 가치와 새로운 공간 활용

기존 입지 가치를 활용한 국내외 공간 전환 사례
대규모 유통시설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앵커테넌트를 유치할 때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이 시설이 과연 오랫동안 고객들이 방문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이에 앵커테넌트와 협상을 통해 신규 콘텐츠 도입과 적정한 리뉴얼 시점을 협의하고 이를 계약에 반영하기도 한다.
영화관, 실내테마파크와 같은 대형 테넌트는 투자비를 고려해 보통 15년 이상의 장기 임대차계약을 통해 입점하기 때문에 협상을 거쳐 리뉴얼 조항을 반영하고,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줄 수 있도록 유도한다. 테넌트 역시 새로운 콘텐츠를 꾸준히 도입해 고객 집객을 유도하고 있다.
유통시설도 자체적인 리뉴얼을 통해 기존 브랜드와 시설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기존 공간에 새로운 방문 목적을 부여하고 있다. 신세계 강남점의 경우 지하 패션 매장을 식품관으로 확대하면서 스위트파크, 하우스오브신세계, 신세계마켓을 선보였다. 리뉴얼 완료 후 1년간 1,000만명의 고객이 찾았다고 한다.
단순히 음식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고객이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홍보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팝업 공간을 활용해 지역 맛집과 화제성 있는 디저트를 선보이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이슈를 만들고 있다.
이마트는 스타필드 마켓을 통해 장보기부터 휴식, 여가생활까지 한곳에서 즐길 수 있도록 공간과 콘텐츠를 도입하고 있다. 스타필드 마켓 군산점의 경우 ‘북그라운드’를 통해 독서와 휴식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어린이 놀이 공간인 ‘키즈 그라운드’와 같은 고객 체류 공간도 확대했다. 가족 단위 고객의 방문을 유도해 경쟁사와 차별화하면서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공간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고객이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다시 찾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가면서 공간을 진화시키고 있다.
유통업체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점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다양한 업태의 등장과 매장 규모의 경쟁,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고객을 모두 다시 붙잡아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통시설이 있던 장소가 가진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 유통시설은 교통 접근성이 좋고 지역의 핵심 상권인 곳을 중심으로 출점해 왔으며, 그 공간을 방문했던 고객의 경험과 위치가 가진 상징성이라는 기반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기존 유통시설의 건물을 재사용해 다시 판매시설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롯데 안양점은 엔터식스 안양으로 전환됐고, 신세계 미아점은 이마트로 바뀌었다. 기존 시설이 가진 판매시설로서의 접근성과 고객의 쇼핑 경험이 자연스럽게 동종 업계로의 전환으로 이어진 사례다.
반면 롯데마트 구로점은 철거 후 지식산업센터인 ‘생각공장 구로’로 신축됐고, 홈플러스 중동점은 철거 후 주상복합 오피스텔로 개발됐다. 교통이 편리하고 입지가 좋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사업성을 찾아 용도를 전환한 사례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에서는 기존 쇼핑 공간을 체험 공간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 체인 중 하나인 로드 앤 테일러 백화점(필라델피아)은 2021년 영업을 종료한 뒤 그 자리에 넷플릭스 하우스가 입점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넷플릭스의 다양한 IP를 활용해 콘텐츠 체험, 게임, F&B, 캐릭터 상품 판매 등을 한 공간에서 제공하는 시설로 바뀌었다.
벨크 백화점(댈러스)이 영업을 종료한 공간에도 넷플릭스 하우스가 입점해 운영 중이다. 넷플릭스의 IP를 순환해 전시하고 새로운 IP로 교체하면서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전환됐다. 시어스 백화점(플로리다)이 폐점한 공간은 실내 놀이시설인 ‘Elev8 Fun’으로 바뀌었다. 기존 백화점의 넓은 실내 공간을 활용해 고객이 다시 이곳을 찾아야 할 새로운 이유를 만든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수요를 기반으로 숙박시설과 상업시설을 결합한 모델로 전환한 사례가 있다. 아사히카와의 세이부백화점(홋카이도) 기존 A관 부지는 호텔과 상업시설로 개발됐다. 다이마루 백화점(나가사키) 자리에는 호텔과 매장을 갖춘 ‘하마크로스 411’이 새롭게 들어섰다. 기존 백화점 건물을 그대로 리뉴얼한 것이 아니라 철거 후 신규 개발한 사례다.
유럽에서는 다양한 기능을 결합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의 라 사마리텐(파리)은 LVMH가 복원해 고급 백화점과 호텔, 사무실, 주택, 어린이집이 함께 들어선 시설로 다시 문을 열었다. 독일의 기존 카우프호프 백화점(만하임)은 주거·업무·상업시설을 결합한 ‘New7’으로 바뀌었다. 영국에서는 기존 데번햄스 백화점(리버풀)의 일부 공간이 실내 엔터테인먼트 시설인 ‘Gravity MAX’로 전환됐고, 나머지 일부는 소매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은 기존 건축물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용도를 결합하는 형태로 활용되는 사례가 눈에 띈다.
유통시설의 리뉴얼을 검토할 때는 기존 입지와 공간의 장점을 살리면서 현재 지역에 필요한 기능을 선택해야 한다. 고객에게 익숙한 장소라는 점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지속적인 재방문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설을 찾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필요하다. 기존 장소의 가치에 새로운 이용 목적을 더하는 것이 리뉴얼의 핵심이다.
기존 입지와 공간의 장점을 바탕으로 현재 지역 상권에 필요한 기능과 신규 수요를 반영할 필요도 있다. 교통 접근성이 좋고 고객에게 익숙한 공간이라는 점은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지속적인 방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 기존 공간이 가진 가치에 체험·숙박·업무·교육 등 새로운 이용 목적을 더하면 쇼핑에 집중됐던 방문 수요를 다양한 생활 수요로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국내 유통시설 중에는 이미 영업을 종료했거나 폐점을 앞둔 곳이 있다. 이러한 시설을 다시 구성할 때는 시설 전체를 하나의 용도로 전환하는 방식뿐 아니라 층별·구역별로 여러 기능을 조합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객 접근이 쉬운 저층에는 쇼핑·식음·체험시설을, 상층에는 업무·숙박·교육시설을 배치하는 등 입지와 건물 조건에 맞춰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의 조합을 통해 시간대별 이용을 확대하고 특정 업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다.
전환 방식도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인 개발에 앞서 팝업 매장, 전시, 지역과 연계한 축제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실제 이용 고객의 수요와 공간의 적합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내점 고객 수뿐 아니라 재방문율, 체류시간, 운영 수익성, 공간 가동률 등을 살펴보고 기능과 운영 방식을 조정할 수 있다.
유통시설 리뉴얼의 성과는 새롭게 문을 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장소의 가치를 계승하면서 주변 상권의 변화와 신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공간과 운영 구조를 만드는 것이 유통시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