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자금조달의 전환점, 토큰화가 여는 새로운 금융 구조

대규모 초기 자본이 투입되는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은 전통적으로 은행 대출이나 기업 내부 자금에 의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기업의 신용등급이나 담보 조건에 따라 한계가 분명하며, 과도한 부채 비율은 재무 건전성을 훼손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제약 속에서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실물자산 토큰화를 활용한 자금조달 방식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센터와 같은 인프라 자산을 토큰 형태로 발행하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구조로, 기존 금융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자금 조달의 속도와 유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실제 사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2025년 10월 미국의 AI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 QumulusAI는 블록체인 기반 신용 프로토콜인 USD.AI를 통해 5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며 GPU 기반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장에 나섰습니다. 이 거래는 승인된 GPU 장비를 담보로 최대 70% 수준의 스테이블코인을 대출받는 구조로 설계됐으며, 전통적인 은행 대출이나 벤처 부채 대비 훨씬 빠르고 유연한 자금 조달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또한 GAIB(Global AI Infrastructure Bank)와 같은 프로젝트는 AI 인프라를 온체인 경제 레이어와 연결해 데이터센터 소유권을 분할하고, 이를 다수의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특정 대기업이나 기관에 한정됐던 투자 기회를 일반 투자자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국내에서도 한국항공대 AI 데이터센터 사례처럼 대규모 프로젝트에 전문 투자자 자금을 유치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향후 토큰화 모델과의 결합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채권, 부동산, 데이터센터 등 실물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올려 토큰화하는 RWA 기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자산의 토큰화란 건물의 소유권이나 설비, 또는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 수익을 토큰 형태의 포트폴리오로 구성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데이터센터 건물 자체는 ERC-721과 같은 대체불가토큰으로 발행하고, 여기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수익을 배분하는 합성 토큰 구조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토큰화된 국채 시장이 1년 만에 8배 이상 성장했으며, 국내에서도 클레이튼과 크레더가 금 기반 토큰화 플랫폼을 선보이는 등 실물자산과 블록체인의 결합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데이터센터는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실물 가치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대표적인 토큰화 대상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자산 토큰화가 제공하는 이점은 분명합니다. 우선 유동성과 투자자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됩니다. 수천억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자산을 소액 단위의 토큰으로 분할해 판매함으로써 개인 투자자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고, 블록체인을 통해 실시간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환금성도 크게 높아집니다.
자금 조달 속도 측면에서도 은행의 복잡한 심사 절차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계약 체결과 자금 집행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QumulusAI가 약 30일 만에 5억 달러를 조달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채 중심의 자금 조달 구조에서 벗어나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유치함으로써 재무 구조를 다변화하고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으며, 블록체인의 투명한 기록 구조를 통해 투자자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다만 이러한 모델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도 존재합니다. 스마트 컨트랙트의 코드 오류나 네트워크 장애, 해킹과 같은 보안 위협은 여전히 현실적인 리스크로 남아 있으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철저한 감사와 보안 체계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실물자산과 연동되는 구조인 만큼 데이터센터의 실제 운영 리스크와 자산 가치 변동을 블록체인으로 정확히 전달하는 오라클 시스템의 안정성 확보도 중요합니다. 규제 측면에서도 토큰 증권에 대한 법적 해석과 제도가 국가별로 상이하고 변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전적인 법률 검토와 준법 감시 체계 마련이 선행돼야 합니다.
다행히 기술 인프라는 이러한 과제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더리움의 레이어2 솔루션이나 국내 클레이튼과 같은 블록체인 플랫폼은 거래 속도와 비용 효율성을 개선하고 있으며, 체인링크와 같은 오라클 솔루션은 실물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JP모건, 블랙록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RWA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국내에서도 LG CNS 등이 관련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데이터센터 토큰화가 단순한 실험 단계를 넘어 주류 금융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향후 일반 투자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안전한 지갑 서비스가 보편화된다면, 토큰화는 데이터센터 산업의 자금 조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