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백화점이 4조원 시대를 여는 법①'쇼핑몰'에서 '목적지'로

1편 | 4조원 백화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쇼핑이 손안에서 해결되면서 한때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한 유통업, 특히 백화점의 성장은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상품 구매가 목적이라면 소비자가 굳이 백화점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백화점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주요 백화점 핵심 점포가 잇달아 사상 최대 거래액을 기록하고 있으며, 일부 점포는 세계적인 백화점과 매출 규모를 경쟁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2025년 연간 거래액이 2조원을 넘어선 곳은 신세계 강남점·센텀시티점, 롯데 잠실점·본점, 현대 판교점 등 5곳으로 늘어났다. 2021년에는 신세계 강남점 한 곳뿐이었다.
특히 백화점 매출 성장의 중심에는 신세계 강남점이 있다. 강남점 거래액은 2021년 2조4940억원에서 2022년 2조8398억원, 2023년 3조1025억원, 2024년 3조3269억원으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3조6717억원을 기록했다. 2026년에는 전년보다 약 9%만 성장해도 국내 백화점 최초로 연간 거래액 4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보다 훨씬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 4조원을 크게 웃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26년 상반기 강남점의 성장세를 토대로 연간 거래액이 약 4조5000억원에 이르면 일본 이세탄 신주쿠점을 제치고 세계 2위 수준까지 올라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세계 매출 1위 점포는 4조8000억원대인 영국 해롯 런던점, 2위 점포는 4조3000억원대인 일본 이세탄 신주쿠점으로 알려져 있다. 신세계 강남점이 2026년 연간 거래액을 4조원 중반대로 마감한다면 ‘세계 2위’ 점포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단순히 ‘4조원’이라는 숫자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신세계 강남점의 도약은 온라인 쇼핑 시대에 오프라인 백화점이 살아남았다는 데 그치지 않고, 백화점의 역할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세계 강남점의 기반은 명품과 VIP 고객이다. 강남점에는 에르메스·샤넬·루이비통을 비롯해 100개가 넘는 명품 매장이 입점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소비력이 높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2026년 상반기 신세계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는다. 백화점 업계가 해외 명품 브랜드 매장을 확대하고 VIP 고객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최근 소비시장의 양극화와도 연결된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여파로 일반 소비자가 지출을 줄이고 있지만 고소득층의 명품 소비는 상대적으로 견조하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대중에게 저가 상품을 판매하기보다 구매력이 높은 고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매출 성장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명품과 VIP 고객은 강남점의 높은 객단가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강남점 거래액이 2조원에서 3조원, 다시 4조원 규모로 성장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최근 성장의 비결로 더 주목할 부분은 백화점을 찾는 고객층을 넓혔다는 점이다.
최근 신세계 강남점이 집중적으로 매장을 확대한 분야 가운데 식음료(F&B)가 대표적이다. 40개가 넘는 브랜드를 모은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 파크’, 호텔 라운지 분위기의 푸드홀 ‘하우스 오브 신세계’, 프리미엄 델리와 신세계 마켓 등을 조성해 약 6000평 규모의 식품관을 완성했다.
이러한 공간의 의미는 단순히 식품 매출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명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유명 디저트를 맛보기 위해 20대가 스위트 파크를 찾고, 가족과 식사하기 위해 하우스 오브 신세계를 방문할 수 있다. 이렇게 유입된 고객은 백화점에서 시간을 보내며 화장품·패션·라이프스타일 매장도 함께 이용하게 된다.
특히 유명 디저트 매장을 포함한 F&B 공간을 찾는 고객 가운데 상당수는 젊은 층이며, 기존에 백화점을 이용하지 않았던 신규 고객도 많았다고 한다. 이들이 백화점을 익숙하게 이용하도록 해 미래 고객으로 키운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오픈스테이지를 활용한 유명 캐릭터 지식재산권(IP)과 K-팝 관련 팝업스토어도 같은 역할을 한다. 신규 브랜드와 콘텐츠를 짧은 주기로 바꾸면서 소비자에게 백화점을 반복적으로 방문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신세계 강남점은 기존 VIP 고객과 명품 라인업을 유지하는 동시에 F&B와 팝업을 통해 젊은 고객과 신규 고객의 유입을 확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명품·VIP 고객이 객단가를 높이고, F&B·신규 팝업이 신규 고객을 창출해 체류 시간을 늘리는 구조다. 다른 백화점도 명품을 통해 객단가와 매출을 높이는 한편, 유명 F&B와 새로운 팝업을 방문객과 체류 시간을 늘리는 성장 축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 백화점 성장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온라인 쇼핑이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을 앞서며 위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온라인 쇼핑의 확산으로 오프라인 공간이 해야 할 역할이 더욱 명확해졌다. 상품을 쉽고 싸게 구매하는 영역에서는 온라인과 경쟁하기 어렵다. 대신 편리한 온라인 쇼핑을 두고도 소비자가 백화점을 찾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의 유명 맛집과 디저트를 경험하고, 새로운 팝업 매장을 구경하며, 다양한 전시와 이벤트에 참여하고, 명품과 패션 신상품을 구매하고, 친구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일련의 경험을 한 공간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신세계 강남점뿐 아니라 경쟁하는 주요 백화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롯데 잠실점은 백화점과 에비뉴엘·롯데월드몰뿐 아니라 롯데월드타워·시그니엘·롯데월드·석촌호수 등이 연결되면서 쇼핑·문화·관광 거점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6년 상반기에만 이곳에서 450여 차례의 팝업이 운영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최근 백화점의 경쟁 상대를 다른 백화점으로 한정하기는 어렵다. 맛집, 카페, 문화시설, 경기장, 관광지, 쇼핑몰 등 소비자의 여가시간을 차지하려는 모든 공간이 경쟁 상대다. 이렇게 보면 신세계 강남점의 경쟁력은 명품을 포함한 좋은 매장을 많이 보유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 가야 할 이유’를 계속 만들어내는 데 있다.
신세계 강남점의 4조 원 도전과 공간 목적지화 전략을 이끈 방유성 부장의 생생한 현장 인사이트는 신간 《리테일 바이블 2030》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온라인 소비가 기본이 된 시대에 '물건을 파는 곳'에서 '사람의 시간을 설계하는 곳'으로 진화한 오프라인 공간의 생존 해법을 다룹니다. 백화점, 복합상업시설, 패션, 외식, 호텔, 모빌리티, 로컬 상권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현업 리테일 전문가 16인이 공동 집필하여 가장 리얼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냈습니다.
집필에는 신지혜(STS그룹 상무), 이재환(무신사 부사장), 방유성(신세계 부장), 송훈석(스타벅스코리아 부장), 최은영(테라로사 부장), 김경식(썬앳푸드 본부장), 민요한(도시곳간 대표), 김준하(더휴식 공동대표), 강기복(열정 대표), 강남구(아이엔지스토리 대표), 김근영(하이파킹 그룹장), 남성훈(아이엠박스코리아 대표), 정명현(짱게임즈 부장), 김성호(테넌트뉴스 대표), 장영봉(차지코리아 이사), 제레박(성수교과서·박진우) 등 16인의 대표 플레이어가 참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