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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용 부동산, 업무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민성식
- 7분 걸림 -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여러 분야에 AI가 도입되면서 업무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바이브 코딩(Vibe Coding)으로 직접 개발을 하기도 하고,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AI를 활용해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럴싸하게 꾸밀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자원이 많아지면서 직무 간 경계도 점차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상업용 부동산 업계에 들어왔을 때는 업계를 나누는 용어가 따로 있어 분야가 다양하고 전문성이 뚜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산운용(AM, Asset Management), 자산관리(PM, Property Management), 임대관리(LM, Leasing Management)처럼 직무와 역할에 따라 업계를 구분했습니다. 그런데 현업에서 일하다 보면 이제는 이런 업무 간 경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것이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는 업역 파괴

부동산 자산운용사가 증권사의 주된 업무였던 자금 주선이나 중개를 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시공사가 주로 하던 부동산 개발도 자산운용사의 한 축이 된 지 오래입니다. 자산관리회사가 해 오던 임대차 업무를 직접 하기도 합니다. 대형 임차인을 유치하거나 투자를 위한 전략적 투자자(SI, Strategic Investor)를 찾기 위해 임대 영역에도 직접 나서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임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운용사가 대형 임차인을 직접 접촉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자산관리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자문회사를 따로 세워 자금 중개나 컨설팅 업무를 하는 곳이 늘었습니다. 또 과거에는 주로 중개법인의 영역이던 중소형 빌딩의 매입·매각 자문까지 사업을 넓히는 곳도 있습니다.

이렇듯 상업용 부동산 업계의 업역 파괴는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다음 두 가지가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1. 경쟁 심화: 본업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습니다

과거에는 소수의 사업자가 시장을 나눠 가졌습니다. 하지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자가 늘었고, 시장은 점차 레드오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수익성이 나빠진 사업자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산운용사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하나의 프로젝트에 여러 운용사가 몰려 경쟁하는 모습이 그 단면을 보여 줍니다. 자산관리회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저가 경쟁이 이어지면서 자산관리 수수료가 십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덤핑 수주로 과거보다 더 낮은 수수료를 제안하는 일도 늘고 있습니다.

중개나 자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임대 수수료를 거의 받지 않는 대신 인테리어 등 다른 사업에서 수익을 얻는 전략을 취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결국 서비스에 걸맞은 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업만으로 적정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자 많은 회사가 인접한 영역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2. 정보 비대칭의 약화: 정보와 노하우가 더 이상 진입장벽이 되지 못합니다

부동산은 본래 정보를 바탕으로 수익을 내는 사업이었습니다. 매각 정보나 임차인의 이전 계획 같은 정보를 먼저 알고 활용하는 것이 경쟁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실거래가가 공개되고 각종 빌딩 거래·임대 정보 플랫폼이 생기면서 일부만 알고 있던 정보가 널리 공개되고 있습니다. 즉, 정보의 비대칭이 상당 부분 사라진 것입니다.

나만 잘한다고 생각했던 노하우도 이제는 평범한 지식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AI가 발달하면서 복잡하다고 여겨지던 일이나 전문가만 검토할 수 있던 영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누구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AI Agent)가 등장하면서 노하우의 가치도 약해지고 있습니다.

정보와 노하우가 곧 진입장벽이던 시절에는 각자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지켜졌습니다. 하지만 그 장벽이 낮아지면서 다른 플레이어가 들어오기도 그만큼 쉬워졌습니다.

마무리하며

상업용 부동산 업계는 오피스, 물류, 리테일, 데이터센터 등으로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반면 그 안에서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은 점점 더 치열한 경쟁에 놓이고 있습니다.

업역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매입부터 임대, 운영까지 한 번에 맡기고 싶어 하는 고객의 수요도 분명히 있고, 이를 원스톱으로 해결해 주는 회사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데이터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곳이 앞으로 우위를 점하고, 산업 전체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정한 서비스 수준을 유지할 수 없는 가격으로 경쟁하다 보면 결국 부동산 산업의 퇴보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기업은 일단 살아남아야 미래도 있다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업무 영역이 무너지고 경계가 흐려지는 지금의 변화가 과연 고객(임차인·투자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인지, 업계 모두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오피니언건설부동산상업용부동산

민성식

친절한 부동산선배 민성식입니다. 영등포의 새로운 랜드마트인 TL타워를 개발하고 있는 (주)스퀘어원에서 LM팀장을 맡고 있습니다.'빌딩 투자 시크릿' 등 다수의 책을 썼습니다. 상업용 부동산 콘텐츠를 공유하는 사이트(www.minsungsik.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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