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만으로 집값을 잡을 수 없는 이유...'욕망의 주택'에 실효적 공급을

화폐는 사회적 청구권, 자산 가치는 욕망의 집적
‘욕망의 이중적 합치(Double Coincidence of Wants)’는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 중 하나입니다. 화폐와 시장의 선후에 관한 논란에도 수많은 물건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었던 데에는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의 욕망을 일치시키는 화폐의 역할이 컸습니다. ‘화폐 없는 시장’이나 ‘시장 없는 화폐’ 모두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화폐는 생산의 거울입니다. 화폐가 생산물을 담보하지 못할 때 그 화폐가 벽지나 불쏘시개로 전락한 사례를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화폐를 보유한 사람에게 해당 화폐가 통용되는 사회는 그 액수만큼의 생산물을 보장합니다. 화폐를 ‘그 사회 앞으로 발행한 어음’, 즉 사회적 청구권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생산과 소득이 늘고, 이를 뒷받침하는 화폐와 신용도 장기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를테면 1971년 남서울아파트(현 반포주공 1단지) 32평형의 분양가는 544만원이었지만, 2026년 현재 실거래가는 약 50억원에 이릅니다. 1971년부터 2025년까지 우리 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기준 770배, 1인당 국민소득 기준 498배 증가하는 동안 반포주공 1단지 가격은 약 920배 상승했습니다.
반포주공 1단지의 가치가 소득과 생산의 성장률을 크게 웃돌며 상승한 이유는 해당 자산에 대한 선호 때문입니다. 선호의 변화라는 복합적인 현상은 수많은 변수가 동시에 작용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주택에 대한 선호는 주택 자체의 품질은 물론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가치에 의해 수시로 재평가됩니다. 지하철이 뚫려 교통이 편리해지거나 대형마트가 들어서 쇼핑이 수월해지고, 명문학교나 대학병원 등이 인근에 들어서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던 주택의 가치도 달라집니다.
세제 개편의 명분과 ‘입지 희소성’이라는 한계
최근 부동산 세제 개편은 이처럼 자산 가치를 결정하는 ‘욕망의 함수’에 인위적인 변수를 주입하려는 국가적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택 세제 개편 논의는 주택 가액과 실거주 여부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비거주 주택이나 단기 보유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장기 실거주자에게 세제 혜택을 집중하는 방식은 주택을 ‘화폐 가치의 저장소’로 활용하는 행위에 사회적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로 보입니다. 화폐 청구권을 자산에 묶어두는 행위를 억제하고, 집을 ‘사는(Buy) 자산’에서 ‘사는(Live) 공간’으로 되돌리겠다는 명분은 명확합니다.
그러나 시장과 제도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촘촘하게 설계된 세제의 빗장이 오랜 기간 형성된 시장 참여자들의 자산 선호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세제는 주택이 지닌 본질적인 희소성을 바꾸지 못합니다. 주택 가치가 크게 상승한 근본 원인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교통·교육·의료·문화 등 인프라 가치에 있다면,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러한 입지와 인프라의 희소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최근 4~5년간 서울 주택시장에서 나타난 비아파트 공급 붕괴와 이에 따른 연쇄적인 가격 전이, 유동성과 인플레이션의 흡수 장치로서 서울 아파트가 지닌 특수성을 세제 개편만으로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시장 참여자들은 조정된 세제 환경에 맞춰 자신의 욕망을 신속하게 재배치할 것입니다. 비거주 다주택을 정리하는 대신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춰진 핵심 입지의 ‘실거주 한 채’로 자본을 집중하는 행태가 두드러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세제 개편이 기대한 자산 가치의 평준화와 달리 핵심 입지와 비핵심 입지 간 자산 격차를 더욱 고착화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실효적 공급을 위한 구조 개혁: ‘주택청’ 신설과 주거 생태계 복원
부동산으로 쏠리는 화폐 청구권을 연착륙시키려면 세제라는 억제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주택시장의 자산 분위별 연쇄성을 회복하고 지역 간 인프라 격차를 해소하는 대안이 병행돼야 합니다.
수도권 주택시장은 전세사기가 대형화·조직화하면서 최근 4~5년간 비아파트 공급이 붕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아파트 시장의 공급 붕괴는 해당 수요를 저가 아파트로 이동시켰고, 이는 아파트 가격 상승을 촉발해 결국 자산 분위별 주택시장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똘똘한 한 채’ 선호와 초양극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급원가 상승에 따른 순공급 제한과 물가 상승에 따른 화폐 가치 하락의 최후 방어 수단으로 서울 아파트의 희소성이 부각된 점도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습니다.
본질적인 과제는 주택시장 구조를 정상화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실효적인 공급이 전제돼야 합니다. 효율적인 주택 공급 추진 주체로 ‘주택청’을 설치해 공공임대주택을 대대적으로 공급하고 도심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주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 지자체와 중앙정부에 분산된 주택 규제 권한을 통합·조정해 국가 차원의 주택 문제 해결 역량을 입법으로 결집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주택시장의 자산 분위별 구조 정상화는 비아파트 부문의 공급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수도권 일대에 과잉 공급돼 미분양 상태인 지식산업센터와 오피스텔 등을 공동주택으로 용도 전환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합니다. 이는 저가 주거 수요를 흡수하는 동시에 자금 경색에 처한 PF 사업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낼 수 있습니다.
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난제가 원가 상승에 따른 분담금 문제에 집중된 만큼 공공 주도의 투명한 사업 추진을 통해 조합원 간 불신과 갈등을 줄여야 합니다. 이와 함께 용적률 특례를 적용해 사업성을 높이는 과감한 정책도 필요합니다. 대신 늘어난 물량의 일정 부분을 주택청이 분양받아 주택 존속 기간 동안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합니다.
실효적 공급의 핵심은 여러 이유로 손에 잡히지 않는 먼 미래의 장기 공급계획에 있지 않습니다. 미래 인구 추계 등 장기 주거 수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당장의 공급 확대를 위해 추진하는 그린벨트 축소에도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규제와 권한을 조정하고 건축·매입·금융지원 전반에서 효율성과 신속성을 갖춘 의사결정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실효적 공급의 열쇠입니다.